주절주절 이야기

산을 오르며

아니온듯 2016. 1. 20. 18:18




산을 오르며

 

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 도종환

 
    

      산을 오르기 전에 공연한 자신감으로 들뜨지 않고
      오르막길에서 가파른 숨 몰아쉬다 주저앉지 않고
      내리막길에서 자만의 잰걸음으로 달려가지 않고
      평탄한 길에서 게으르지 않게 하소서


 

      잠시 무거운 다리를 그루터기에 걸치고 쉴 때마다 계획하고
      고갯마루에 올라서서는 걸어온 길 뒤돌아보며
      두 갈래 길 중 어느 곳으로 가야 할지 모를 때도 당황하지 않고
      나뭇가지 하나도 세심히 살펴 길 찾아가게 하소서


 

      늘 같은 보폭으로 걷고 언제나 여유 잃지 않으며
      등에 진 짐 무거우나 땀 흘리는 일 기쁨으로 받아들여
      정상에 오르는 일에만 매여 있지 않고
      오르는 길 굽이굽이 아름다운 것들 보고 느끼어
      우리가 오른 봉우리도 많은 봉우리 중의 하나임을 알게 하소서

 


      가장 높이 올라설수록 가장 외로운 바람과 만나게 되며
      올라온 곳에서는 반드시 내려와야 함을 겸손하게 받아들여
      산 내려와서도 산을 하찮게 여기지 않게 하소서.

'주절주절 이야기' 카테고리의 다른 글

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  (0) 2016.02.03
길 위에서  (0) 2016.01.22
오늘은 그냥 그대가 보고싶다  (0) 2016.01.20
절망보다 더 슬픈건 잊혀진다는 것   (0) 2016.01.19
동백꽃  (0) 2016.01.17